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세계 최고의 명품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에 관한 것입니다.
'테넌트 부인'이라는 이름의 스트라디바리우스 경매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20억.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깁슨'의 가격은 40억원.
'파가니니 콰르텟'(두대 바이올린, 한 대의 비올라, 한 대의 첼로)의 가격은 250억.
정말 억~소리가 나는 악기들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명품인 스트라디바리우스.
그것을 만든 사람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입니다.
1644년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는 목수로 일하다가 22세에 현악기 제조에 뛰어들어
93세까지 자신만의 명품 현악기 제작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가 만든 1,200개에 달하는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비올라.
전 세계의 연주자들이 스트라디바리우스에서 울려 나오는 매끄럽고 마술적인 음색에
빠져든다고 합니다.
다양한 인간 내면의 감정 표현을 담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음색의 비결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나이테의 폭이 촘촘해진 나무로 만든 동체의 칠에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명장의 혼이 명품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완벽에 대한 충동.
최고의 음색을 만들어내기 위해 숱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했기에
3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는 예술가의 혼이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동유 화가의 지독한 그리기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현악기에 미쳐 있었다면
반복에 미친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김동유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김일성, 박정희, 마오쩌둥, 케네디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때 마릴린 먼로가 매혹적인 자태로 유혹합니다.
'마릴린 먼로 vs 마오주석' - 3억 2천만원
그의 작품은 200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는 가격입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대표 인물이 그려내는 아이러니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보이는 것이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가 그리는 기법을 '픽셀 모자이크 회화'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세포 같은 픽셀의 이미지들이 모여서 하나의 전체 이미지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가군은 앤디워홀의 자기 복제 방식처럼 무작정 찍어내는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로 만든 것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다가가 작품을 쳐다보니
표면의 질감과 붓터치의 세심한 흔적들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김동유 화가의 손으로 일일이 그린 작은 그림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마오주석 작품에는
마오주석 얼굴 속에 1369개나 되는 마릴린 먼로 얼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독한 그리기.
그는 작품에서 노동의 가치를 발견한다고 합니다.
하루 12시간 그림을 그리고 잠자는 시간은 겨우 4시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반복하고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김동유 화가 고유의 키워드를 발견한 것입니다.
반복과 집적 그리고 나
김동유 화가를 언급할 때 지역 출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방대 출신 지역 작가인 그는
변방에 있는 외톨이 장인이었던 것입니다.
대학시절 국내 화단에는 설치미술 영상매체가 유행했을 때
그는 손맛을 버리지 못해 2가지 이미지를 한 화면에 구축하는 작업을 혼자 연구했습니다.
그의 초기작품에는 꽃, 벌, 나비들이 집적, 반복되면서 하나의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든 것도
계속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입시미술학원에서 알바하면서 생계를 유지한 김동유 화가.
어쩌면 사회적으로 비적응자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중 그림'에 미쳐있었습니다.
결국 '열정'이 재능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쌓이면 능력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김동유 화가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독 그 전시회가 저한테 아직까지 여운이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한 평생동안 온갖 혼을 불어넣어 악기를 만들었기에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소리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들었던 악기들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합니다.
김동유 화가의 지독한 그리기 그리고
안토니오 스타라디바리의 장인 정신이 제 자신을 부끄럽게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변명거리를 만들고
할까말까 망설이다 결국 시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현재의 저였던 것입니다.
삶에는 몇 개의 계정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공의 계정'이고, 다른 하나는 '실패의 계정', 또 다른 하나는 '도전의 계정'입니다.
저는 시도했다가 이루지 못한 것을 실패의 계정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작년 사업 실패 이후로 실패의 계정으로 가군 통장 내역을 꽉 채워넣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인출할 때마다 좌절과 낙담만 할뿐이었던 것입니다.
이젠 시도 자체를 도전의 계정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끊임없는 도전.
내 안에 금맥을 찾아서 캐낼 때까지 계속 하려고 합니다.
이젠 저만의 지독한 그리기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치열하게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봅니다.
2010년 7월 1일 희망씨앗 레터 13번째. 울림 그리고 지독한 그리기





잘 읽었습니다.
왠지 공감이 가네요.
저도 치열하게 살도록 할께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