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간고사가 끝난 5월.
가군의 눈길을 끄는 포스터 한 장을 발견합니다.
그건 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
그것도 중국 대륙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에게는 처음 해외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 구국장정 6천리. 내가 꼭 가고 말거야.'라고 결심하자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것이 참가비 80만원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취생이었던 가군에게는 무척 큰 돈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심야 알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시간과 안 겹치고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할인매장인 킴스클럽에서 심야 농산물 야채 코너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한달간의 고군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에 들어오는 과일들을 몽땅 다 창고로 나르고,
또 매장에 진열도 하고 거기에다 물건도 팔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일이 끝나자마자 녹초가 되버렸는데 저는 학교로 향해 수업을 들었습니다.
6월 기말고사 시험 때에도 여김없이 밤에는 알바, 낮에는 시험과 혈투를 치뤘습니다.
그때 '중국대륙 여행'이라는 목표가 너무나 강렬했기에
심야 알바와 공부 병행의 이중고조차 달콤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원하는 돈을 모았고,
장준하 참가 대학생에도 선발되어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그때까지 솔직히 전 장준하라는 사람을 몰랐습니다.
단지 그가 독립운동가이었다는 사람이었고,
나에게 중국이라는 곳을 처음 발딛게 해 준 고마운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준하 그리고 6천리 중국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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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지금 젊음이라는 가장 큰 무기가 있다. 아니 내가 가진 것은 이것 뿐이다. 이 무기는 곧 나의 생명이다. 그러나 이 무기도 언젠가는 녹이 슬 것이다.
녹이 슬기 전 나는 이 무기를 조국광복 전선에서 들 것이다. 이것이 조국이 준, 내가 조국으로부터 받은, 단 하나의 그리고 다시는 받지 못할 무기이다.
- 장준하전집 1, <돌베개>, p. 77 |
장준하.
그의 나이 26살 때 스카다 부대를 탈출하여
중경 임시정부까지 이르는 6천리의 장정을 감행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민족을 살릴 조국의 힘이 중경에 있다고 믿었고
그 호수 속으로 뛰어들어 조국 광복에 몸바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장준하에게 있어 '젊음'은 가장 큰 무기였고
건너야 할 수많은 난관들은 '조국을 위해 한목숨 바치겠다'는
그의 신념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그와 똑같은 나이였던 26살이었던 저는
단지 중경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그 숙원을 찾아
서쪽으로 향하는 장준하의 굳은 의지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지금 어딜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
성공서적이나 유명 철학자에 기웃거리면서 손쉽게 남의 답을 얻으려고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 질문에
장준하는 스스로 부여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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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애를 몰라서 조국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고, 조국을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조국을 팔았는가.
우리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련다. 나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 가슴의 피눈물을 삼키며 투쟁하련다.
이 길을 위해 나는 가련다. 나의 인생의 과정은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이정표의 푯말을 꽂고 이제부터 나를 안내할 것이다 - 장준하전집 1, <돌베개>, p.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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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죽을 상황에서도 밤을 지새우며 한없이 울부짖었던 이 말은 단호한 결의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6천리 대장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시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중경에서 독립 지도자를 만나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국의 아들임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생각은 장준하를 중경 임시정부로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중간중간에 그의 목표를 좌절시키는 암초들이 꽤 있었지만 끓어오르는 장준하의 열정과 신념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걸어서 중경 임시정부까지 가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비통한 죽음을 당할 때까지 한 치의 타협없이 올곧게 민족주의자 삶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버팀목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왜 사는가.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 홍구공원 매헌 2층에 걸려있는 글 -
뜨거운 불빛으로 타올렸던 장준하의 삶 속에서 '신념의 힘'을 가지게 했던 6천리 대장정.
보라!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장정 첫째날 상하이에 도착한 뒤 윤봉길 폭탄투척 장소인 홍구공원에
걸려있던 글 한 구절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가슴 응어리에서 뜨거운 감정이 밀려와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수가 없었습니다.
나이 25살이었던 윤봉길 의사.
그가 도시락 폭탄을 던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고귀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나라와 겨레에 대한 사랑이 더 컸던 것입니다.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두머리 갈매기가 조나단에게 훈계하면
"썩은 고기나 먹고 살아가면 그뿐이지 더 멀리, 더 높게 나는 것은
갈매기에게 아무 쓸모없는 짓이야."라고 말합니다.
이에 조나단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이 가장 책임감있는 갈매기라고
먹는 연습이 아니라 나는 연습을 하루에도 수백번 합니다.
<갈매기의 꿈>의 조나단와 마찬가지로 윤봉길에게는 큰 대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6천리 중국대륙을 되밟아보면서
임정을 찾아가던 그 6천리, 발길 발자국마다에 뿌리고 온 원한과 심고 온 신념, 그리고 모질던 스스로의 인간적인 투쟁이 지금 이 밤을 조용히 짓씹고 섰는 나의 눈시울을 새삼스럽게 뜨겁게 하였다. 학병출전, 일군탈출, 국내잠입을 위한 특수훈련, 그리고 오늘 이 조국에의 환국까지 기적의 역정이었던 만 2년동안이 무량한 감개로 새벽 안개 속에 젖고 있었다. - 장준하전집 1, <돌베개>, p. 348~349
광복군 훈련반에 3개월 머물었던 임천제일 중학교에서 단조롭고 무의미한 일상을 느껴보기도 합니다.
파촉령을 넘어 그들이 그토록 가고 싶었했던 중경임시정부까지 찾아가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민족주의자의 삶을 사신 장준하와
일제 치하에 빌붙어 아부하고 정권에 빌붙어서 기득권층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둘다 열심히 살았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들의 차이점이라면 신념과 이상을 가지고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우리를 위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신념과 이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었습니다.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였던 그들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해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고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한 사람의 방향과 향기를 결정해주는 것이
자신의 철학과 신념, 의지임을 장준하 선생님과 윤봉길 의사를 통해
내 가슴으로 전해집니다.
장준하 대장정에서 보고 느낀 이 감정들을
일상 생활에서 끊임없이 끄집어 내고 내 삶의 동력으로 삼으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또한 지금 저에게도 젊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 무기를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요.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희망씨앗레터 #07








아주 멋지네요. 목표의식이 희미해진 금요일 밤에 머리를 뎅뎅 울리는 글입니다. 감사해요!^^